검색결과
  • (630)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(15)

    일제경찰은 또 조선어학회의 자매기관인 조선기념도서출판관과 양사원의 설립에 대해서도꼬투리를 잡았다.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이란 1935년 조선어학회가 부설로 설치한 기관으로 돈 많은 유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8 00:00

  • (629)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(14)

    조선어학회는 실제로 1921년12월3일 휘문의숙(현 휘문 중·고등학교)에서 「조선어연구회」란 이름으로 처음 탄생했다. 그 당시 사립학교 조선어선생을 지내던 임경재(휘문학교 교장)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7 00:00

  • (628)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(13)

    조선어학회와 상해임시정부사이의 연관이란 사실 터무니없는 올가미였다. 조선어학회 간부들의 행동을 과거에서부터 하나하나 조사하던 경찰은 1927년8월 이윤재가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6 00:00

  • (627)-제자는 정인승|조선어학회 사건(12)

    우리 세명 담배동지들의 담배도둑질은 귀신같았다. 홍원경찰은 예심조서를 꾸미기 시작하면서 다시 우리들을 바삐 끌어 내어다가는 볶아대었다. 그리하여 담배동지 세명은 하루에도 한 두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5 00:00

  • (626)-제자는 정인승|조선어학회 사건

    설날이라고 생색을 내면서 우리를 골탕먹인 일본경찰은 언제나 그렇게 음식에 있어 우리에게 후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. 우리 한글학자 일행29명의 집은 대부분이 서울에 있어 가난한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4 00:00

  • (625)-제자는 정인승|조선어학회 사건(10)

    한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. 1943년1월1일. 아침나절에는 새해첫날이라 그런지 한사람의 동지도 끌려나가지 않았다. 오늘은 웬일이라고 편히 보내게 하려는가하고 숨을 돌리고있는데 간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2 00:00

  • (624) 조선어학회 사건|정인승

    홍원경찰서에 끌려온 지도 석달이 넘고있었다. 밖에는 흰눈이 내리 쌓이고 찬바람이 스며들어 유치장 벽에 몸이 닿으면 아리도록 추웠다. 석달간을 취조했으나 이렇다할 범죄사실을 밝혀내지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2.01 00:00

  • (623)(8)정인승

    취조관들이 밤사이 서로 모여 머리를 짤 대로 짜서 다음날 내놓은 심문이란『사건에 왜 임진왜란이라고 왜 자를 썼느냐』『동경이란 말을 간단히 설명하고 경성에 대해서는 왜 자세히 늘어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30 00:00

  • (622)조선어학회사건(7)정인승

    홍원 경찰서에서 우리 동지들이 취조를 받은 곳은 널따란 연무장 이었다. 우리동지 29명에 대해 10여명의 전담 취조반이 편성되어 넓은 연무장 마룻바닥에 띄엄띄엄 책상과 걸상을 놓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9 00:00

  • (621)조선어학회 사건(6)정인승

    내가 들어간 제3감방에는 김윤경·이희승·이석린 등이 있었다. 모두 그 동안 심한 고문을 당한 모양, 허탈상태에 빠져 있었다. 이극노는 제4감방에 갇혔다. 제4감방은 겨우 두 사람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8 00:00

  • (620)조선어학회 사건(5)정인승

    열흘이 지나자 이극노의 그 호령과 비명도 잠잠해졌다. 저녁나절 끌려들어오는 이극노의 모습은 초저녁 어스름에 짙게 물들어 큰 키가 더욱 초라해 보였다. 그 호걸스럽던 풍모가 어디로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7 00:00

  • (619)조선어학회 사건(4)|정인승

    정태진은 나와 연희문과 동창생이다. 미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조선어 사전편찬 일을 하자고 내가 제의하여 교편생활을 그만 두고 나와 더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5 00:00

  • (618)조선어학회사건(3)|정인승

    북풍 찬바람에 몸이 오싹해지는 새벽에 기차는 함흥정거장에 도착했다. 우리 일행을 끌고 가는 형사들이 두런두런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이극노 권승욱 그리고 나 셋만을 내리라고 했다.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4 00:00

  • (616)조선어학회 사건(1)|정인승

    1942년10월1일. 옷깃을 쌀쌀한 바람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희뿌연 한 첫 새벽길이었다. 나는 밤을 새워 사전편찬 일을 한 피로를 싸늘한 새벽바람에 씻어가며 혜화동 성벽 밑 막바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2 00:00

  • (615)제28화 북간도(35)

    흰 수건이 검은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. 흰 저고리 치마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. 윤동주의 『슬픈 권속』이란 시다. 북간도 동

    중앙일보

    1972.11.21 00:00

  • (343)|가요계 이면사(24)|고복수

    서민호가 빅터·레코드 연주단을 맡아 반도가극단으로 개편한 것은 1939년이었다. 이 반도가극단은 서민호를 단장으로 김도연(전 국회의원), 신윤국(일명 신현모), 김양수(증권거래소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2.28 00:00

  • (278)전문학교(6)-김효록

    보전은 설립당시 전임교수가 없이 강사로만 출발했다. 『각 전문과 담임강사는 외국에 유학하여 전문과를 졸업한 자로 한다』는 기록이 있어 당시로 보면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0.12 00:00

  • (268)제19화 형정반세기(11)

    30년대 말부터 일본어 사용 등 강력한 동화정책을 편 일제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말과 글, 얼의 말살을 꾀했던 사건으로 조선어학회사건을 손꼽을 수 있다. 37년부터 일본천황에게 충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9.29 00:00

  • 겨레의 글과 얼 지켜 반세기|한글 학회 창립 50돌 맞아 푸짐한 사업 계획

    겨레의 글과 얼을 지켜온 「한글학회」가 오는 12월3일로 창립 50돌을 맞는다. 우리 민족의 투쟁사이며 수난사이기도 한 「한글학회」가 걸어온 반세기를 기념하기 위해 「한글학회 50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7.07 00:00

  • (184)|방송 50년(13)|이덕근

    태평양전쟁이 중반에 들어선 1943년 3월에서 4월까지 사이에 경기도 경찰 부의 고등계 형사들이 방송국의 한국인 기술자와「아나운서」의 집을 소리 없이 급습, 약 40명을 연행해간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6.19 00:00

  • (159)|경성 제국 대학(13)|강성태

    홍진기씨는 대학 졸업 후 상법의 권위자인 서원관일 교수의 조수로 연구실에 남아 있을 때 주로 교수들만 집필하던 경성 제대 법학회 논집에 「주식회사 합병에 있어서의 교부금」이란 논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5.20 00:00

  • 한글에 맹점 있었다|국어연구 3개년 계획의 의의|김민수

    언어·문자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나, 우리는 이를 떠나서 하루도 실주 없다. 특히 한 국가사회 형성의 기본요건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질서를 세우는 일이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커다란

    중앙일보

    1970.10.05 00:00

  • 한결선생

   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을 후학들은「주보따리」라고 불렀다. 물론 애교있게 부른 스승의별 명이다. 주선생은 한글의 암흑기에 등사판 한글교재를 보따리에 싸서 들고 다니며 학교를 전전했었다

    중앙일보

    1969.02.06 00:00

  • 입후보자들의 약력

    ◇박정희 후보(공화당) ▲경북 선산 출신·50세 ▲만주군관 학교 예과·일본육사졸업 ▲육본 작전국장 ▲1군 참모장 ▲6관구사령관 ▲2군 부사령관 ▲5·16혁명주도 ▲최고회의 의장▲대

    중앙일보

    1967.03.24 00:00